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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미디어 권력, 노동 소외, 시청률 윤리)

by goodinfor-1 2026.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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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가 "저 사람, 왜 저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나서 그 질문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30년을 일하고도 이름 석 자 하나 기억되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식이 이 영화의 본질이었습니다.

미디어 권력 구조가 만든 함정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건 압박입니다. 라디오 부스라는 좁은 공간,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 그리고 생방송이라는 시간 제약. 이 세 가지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더 무섭다고 느낀 건 테러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스튜디오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계산이었습니다. 국장은 시청률을 올릴 타이밍을 재고, 경찰청장은 협상이 아닌 체면 관리를 선택하고, 방송사는 폭발 장면이 더 나와줘야 극적이라고 속내를 드러냅니다. 이건 픽션 속 과장이 아닙니다.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 이론에서 말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프레이밍이란 언론이 사건을 보도할 때 특정 측면을 강조하고 다른 측면을 축소함으로써 수용자의 인식 자체를 설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박노규의 절규는 처음부터 '테러범의 협박'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둬집니다. 그가 왜 그 다리를 선택했는지, 그 다리를 직접 지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방송에서 끝내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실제로 뉴스를 틀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지금 내가 보는 뉴스도 누군가의 프레임 안에서 재단된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노동 소외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영화의 핵심 정서는 분노보다 '무시당했다'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박노규가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야간 작업 중 공사장 인부 셋이 한강으로 떨어졌습니다. 구조는 오지 않았고, 세 사람은 2만 5천 원을 벌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과는커녕 보상도 없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건 돈도, 도주도 아니었습니다. 단 한 마디,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건 사회학에서 말하는 노동 소외(Labor Alienation)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 소외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결과물이나 노동 과정 자체로부터 단절되어, 결국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박노규는 다리를 지었지만 그 다리의 주인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는 일용직 잡부였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2023년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의 사망 재해 비율은 전체 산업 평균 대비 3배 이상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영화 속 박노규의 이야기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도 이 수치를 찾아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습니다.

시청률 윤리와 언론의 자기기만

영화 중반 이후, 방송국 내부에서 오가는 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입니다. "박노규가 인질을 죽이는 장면이 나와줘야 사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논리가 아무렇지 않게 나옵니다. 시청률 78%를 찍었다는 소식에 "수고했어, 끝나고 한잔하자"는 말이 바로 이어집니다. 이 두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부분입니다.

저널리즘 윤리(Journalism Ethics)는 보도의 공공성, 정확성, 독립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습니다. 저널리즘 윤리란 언론이 권력이나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고, 사실을 공정하게 전달하며 공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직업적 규범 체계를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방송사는 이 원칙을 정반대로 뒤집습니다. 보도는 공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청률을 위한 콘텐츠가 됩니다. 인질의 생사보다 화면 구성이 먼저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년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국내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응답자의 30% 미만으로 집계됐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영화가 개봉한 2013년보다 지금이 더 낮습니다. 이 영화가 10년이 넘도록 유효한 이유가 이 숫자 하나에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언론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보면서, 저는 지금 내가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도 결국 그 시청률의 일부였던 게 아닐까 하는 불편한 자각이 남았습니다.

이 영화가 끝나도 남는 질문

더 테러 라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당신은 저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영화는 테러범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국가와 언론을 단순한 악으로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논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고, 그게 모여서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구조를 시스템 실패(Systemic Failure)라고 부릅니다. 시스템 실패란 개별 구성원의 악의가 아니라, 구조 자체의 설계 오류나 인센티브 왜곡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그 메커니즘을 극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영화가 남기는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언론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 국가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졌는가
  • 우리는 보도를 소비하면서 그 안의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는가

엔딩 이후에도 통쾌함은 없습니다. 대신 질문 하나가 조용히 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같은 이유로 같은 절망을 겪고 있지 않을까. 더 테러 라이브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그 질문을 직접 마주해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영화 한 편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p4yBMSk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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