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당이 매력적일수록 영화가 더 불편해진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범죄도시2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그 불편함이 잘 가시지 않았습니다.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이라는 인물이 주는 묘한 잔상 때문이었는데, 단순히 무섭다는 느낌이 아니라 '저런 인간이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강해상, 10kg 증량과 1년의 태닝이 만들어낸 빌런
손석구가 처음부터 강해상 역할에 낙점된 건 아닙니다. 2019년 장원석 대표의 소개로 이상용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감독은 그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합니다. 이후 손석구의 작품을 보고 결정을 내렸는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캐스팅 과정에서 나온 배우가 종종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더군요.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오히려 고정관념 없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손석구는 이 역할을 위해 4개월간 약 10kg의 벌크업을 진행했습니다. 벌크업(Bulk-up)이란 단순히 살을 찌우는 게 아니라, 근육량과 체지방을 함께 늘려 전체적인 체격을 키우는 훈련 방식입니다. 벤치프레스 기준으로 100kg도 들지 못하던 그가 120kg까지 올렸고, 스트렝스 위즈(Strength Phases), 즉 최대 근력을 목표로 하는 고중량 훈련을 병행했습니다. 여기서 스트렝스 위즈란 반복 횟수보다 무게 자체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훈련 방법론으로, 근육의 크기보다는 밀도와 힘을 키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 결과가 화면 속 강해상의 체격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또한 베트남 현지 설정에 맞추기 위해 촬영 1년 내내 피부 태닝을 유지했는데, 이 정도 준비라면 단순히 배역을 소화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외형부터 안에서 밖으로 채워나가는 방식의 배우가 훨씬 강한 존재감을 만들어냅니다.
강해상의 가슴과 등에 새겨진 문신도 그냥 디자인이 아닙니다.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한자 문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구대천지수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원수라는 뜻으로, 복수 의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입니다. 와신상담은 땔감 위에 눕고 쓸개를 핥으며 목표를 향해 고통을 견딘다는 고사에서 온 표현으로, 이 두 문구가 강해상이라는 인물의 내면 전체를 함축합니다. 이 문신들은 타투이스트 임지수 실장이 디자인하고, 필리핀 교도소에서 비전문가가 새긴 것이라는 설정에 맞게 일부러 너저분하게 표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해상의 주 무기인 마체테(Machete) 역시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마체테란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에서 주로 수풀을 베거나 코코넛을 자르는 데 쓰는 날이 넓고 긴 도검류 농기구입니다. 이상용 감독이 베트남 현지 답사 중 한 여성이 짧은 마체테로 코코넛을 쪼개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둔탁한 쪼개는 느낌이 무섭게 다가와 강해상의 무기로 채택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 마체테가 실제보다 짧은 이유도 그 경험에서 비롯된 의도적 선택이었습니다.
강해상이 인상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개월간 약 10kg 벌크업과 1년 태닝으로 외형 완성
- 불구대천지수·와신상담 한자 문신으로 내면 서사 암시
- 마체테를 주 무기로 선택해 이국적이고 둔탁한 공포감 구현
- 촬영 전 푸시업으로 거친 호흡 유지, 에너지 극대화
통쾌함 뒤에 남는 불편함, 카타르시스의 이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동석의 주먹이 강해상을 응징할 때마다 속이 뚫리는 쾌감이 있었는데,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 기분이 왜인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은 영화가 단순한 오락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신호입니다.
이 영화에서 마동석의 펀치 효과음, 이른바 타격감(Impact Sound)은 굉장히 공들여 설계되었습니다. 타격감이란 격투 장면에서 관객이 신체적으로 충격을 느끼도록 설계한 사운드 믹싱의 효과로,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관객의 감정 반응을 직접 자극하는 장치입니다. 이상용 감독은 사운드 믹싱 단계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괴롭힌 악명 높은 범죄자를 응징한다"는 컨셉에 맞춰 타격음을 10급 펀치 수준으로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결과물은 분명히 효과적이었고, 저 역시 그 펀치 소리가 나올 때마다 몸이 반응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비판적으로 보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강해상이라는 인물의 서사나 동기가 거의 생략된 채, 그를 일방적인 폭력의 도구로 소비하는 구조는 관객에게 즉각적인 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원래 억눌린 감정을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해소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카타르시스가 '힘에 의한 해결'이라는 방식으로만 반복될 때, 법과 제도, 사회적 해결에 대한 고민이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영화 심리학 측면에서 보면, 강한 악과 명확한 응징 구조에 대한 관객의 수요는 사회적 불안감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범죄 관련 공포 심리와 미디어 소비 패턴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일상에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높게 인식하는 개인일수록 정의가 명확하게 실현되는 서사를 더 강하게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제 경험상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는 단순히 액션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기 우리 사회가 느끼던 집단적 불안을 이 영화가 정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베트남 배경 역시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현지 촬영이 불가능해지면서 제작진은 배경 촬영 분량만 베트남에서 따오고, 배우들의 연기는 한국에서 블루스크린을 활용해 CG로 합성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블루스크린 합성(Chroma Key Compositing)이란 특정 색상의 배경을 제거하고 다른 화면을 덧입히는 영상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어색하지 않으려면 렌즈 설계, 조명, 카메라 앵글을 촬영 전부터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데, 범죄도시2 제작진은 그 계산을 사전에 정밀하게 마쳐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다만 이 과정에서 특정 지역을 범죄와 혼란의 무대로 소비하는 방식이 현지 문화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 속이 뚫리면서도 뭔가 찜찜했던 건, 제가 느낀 카타르시스가 어디서 온 건지 스스로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범죄도시2는 통쾌한 응징을 원하는 우리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키면서도, 그 욕구 자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보는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원하는 분이라면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