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암살 (역사 부채감, 친일 배신, 독립운동)

by goodinfor-1 2026. 4. 11.
반응형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오랫동안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냥 교과서 속 활자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감사함은 알았지만 어딘가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 <암살>을 보고, 거기에 더해 실제 6·25 참전용사 어르신들의 인터뷰까지 접하고 나서야 그 거리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글은 그 감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역사의 무게: 우리는 그 시절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 <암살>의 배경은 1933년 일제강점기입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란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1945년 광복까지 35년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 통치한 시기를 가리킵니다. 저는 이 시기를 막연히 "힘들었던 과거"로만 인식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막연함이 구체적인 공포로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밀정(密偵)의 존재입니다. 여기서 밀정이란 같은 민족 내부에서 일본 제국주의 기관에 정보를 넘기는 첩자를 의미합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배신이 훨씬 더 잔인한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그냥 악역이 아니었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나약함이 투영된 캐릭터였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독립운동의 방식 중 하나였던 의열투쟁(義烈鬪爭)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됩니다. 의열투쟁이란 소수의 결사대가 일제 고위 관료나 친일 인사를 직접 제거하거나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방식의 무장 저항 운동입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이름이 영화 속 대사로 언급될 때, 저는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얼마나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했는지가 새삼 피부에 닿았습니다.

이 시기 독립운동가들이 처했던 현실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의 경무국이 암살 작전을 기획하고 집행했으나, 내부 밀정으로 인해 작전이 반복적으로 실패했습니다.
  • 간도참변(1920)과 같이 독립군의 군사적 승리 이후 일본군이 민간인 수백 명을 학살하는 보복이 자행되었습니다.
  • 임정 요원들은 중국 상해, 만주 등지를 전전하며 자금난과 식량난 속에서 활동했습니다.

친일과 배신: 선악의 경계를 단순히 그을 수 있을까

저는 이 부분을 가장 오래 생각했습니다. 과연 친일(親日)을 했던 인물들을 단순히 "나쁜 놈"으로 규정하는 게 맞는 걸까요?

친일 행위를 법적으로 규명하려 했던 시도가 반민특위(反民族行為特別調査委員會), 줄여서 반민특위입니다. 여기서 반민특위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일제강점기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 조사 기구를 말합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부의 방해와 내부 갈등으로 1949년 사실상 해체되었고, 다수의 친일파가 처벌을 피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영화 속 염석진의 재판 장면이 바로 이 반민특위 분위기를 연상케 합니다. 그는 "독립운동 외에는 한 일이 없다"며 당당하게 법정에 섰고,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납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분노보다 허탈감이었습니다. 역사가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물론 친일 협력의 스펙트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본 국적 취득, 군자금 제공, 정보 제공, 강제 동원 협력 등 그 양태가 다양하고, 자발성과 강압의 경계도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민족에게 해를 끼친 행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단순히 선악으로 나누기보다, 그 구조적 맥락을 함께 이해하는 게 역사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기억이 의무가 되는 이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영화 속 이야기와 연결되는 실제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6·25 전쟁 참전용사 어르신들이 영화 포스터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캠페인이 공개되었는데, 그 어르신들은 수십 년간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다시 전쟁이 나도 싸우러 나가겠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편히 살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나이에,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경이롭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6·25 전쟁 국내 생존 참전용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90세를 넘기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우리가 이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역사의식(歷史意識)이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역사의식이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영화 한 편, 인터뷰 영상 하나가 저에게 그걸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의열투쟁 같은 극단적인 희생은 요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켜낸 사회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는 우리 세대의 몫입니다. 기억하는 것, 기록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책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암살>이 단순한 액션 영화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름 없는 죽음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고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xsjcdambWs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