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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 (고립감, 현실적 재난, 촬영 비하인드)

by goodinfor-1 2026.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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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긴장감 있는 재난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터널이 무너진다는 소재가 흥미롭긴 했지만,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기대하고 들어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서는 순간 뭔가 이상한 감각이 남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한 게 아니라,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저한테 남긴 첫 번째 충격이었습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아낸 연기의 무게

영화 터널은 소원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 감독은 영화 끝까지 간다, 드라마 킹덤 등을 연출한 연출자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 영화가 일반적인 재난 영화의 공식인 대규모 CG와 패닉 상태의 군중 묘사를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점입니다. 대신 한 사람의 고립된 시간에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건 크랭크인(Crank-in), 즉 영화 촬영을 처음 시작하는 날의 첫 장면입니다. 크랭크인이란 영화 촬영의 공식적인 시작을 의미하는 영화 현장 용어입니다. 그 첫날, 하정우 배우는 물을 하수구에 버리고 햇빛을 바라보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던 이 '마지막 햇살을 바라보는' 디테일을 배우 본인이 스스로 추가했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이야말로 연기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지점입니다. 촬영 전부터 인물의 운명을 몸으로 미리 살아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세트 촬영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공간 구성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 미학 용어입니다. 이 영화는 미장센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공간을 좁게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이 서서히 확장되면서 카메라 앵글 역시 점점 와이드(wide)로 바뀝니다. 와이드 앵글이란 넓은 화각으로 더 많은 배경을 담아내는 촬영 방식을 말합니다. 관객이 화면을 통해 개방감을 함께 느끼도록 설계한 것인데, 제가 다시 볼 때 이 부분을 의식하고 보니 확실히 그 감각이 전달됐습니다.

촬영 과정 자체가 배우들에게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는 점도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콩가루, 숯가루, 미숫가루를 섞어 만든 분진을 테이크마다 얼굴에 뿌렸고, 실제 폐쇄된 터널 안에서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하정우 배우는 실제로 수염과 손톱을 촬영 내내 깎지 않았고, 분장실에 트레드밀을 들여와 틈날 때마다 달리며 몸을 야위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본인 촬영이 없는 날에도 5일 동안 200km를 걸었다고 하니, 이건 연기가 아니라 거의 체험에 가까운 준비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특히 좋아했던 장면은 카 카탈로그를 찢어 철근에 말아 붙인 메모 같은 소품들입니다. '머리 조심'이라는 느낌으로 본인의 공간을 꾸며가는 정수의 모습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보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질서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장면이 저한테는 이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눈에 띄는 비하인드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터널 붕괴 장면은 실제 옥천터널을 개조해 제작했으며, 외벽과 가드레일 신축에만 약 10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 매 테이크마다 실제 콩가루를 날려 분진을 표현했으며, CG로는 중력과 충격감을 살리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 강아지 탱이의 배변 장면은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포착하기 위해 5일이 걸렸습니다.
  • 실제 폐쇄된 터널에서 조명을 꺼달라는 협조를 받아 촬영했고, 앞차와의 충돌 공포가 오히려 더 리얼한 연기로 이어졌습니다.

터널 바깥이 더 무서운 이유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터널 안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터널 밖이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한 사람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동안, 바깥에서는 효율과 비용, 그리고 다른 터널 공사의 재개 여부를 따지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그 모습이 불편할 만큼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이라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 구조의 문제를 드러내는 창작 방식을 말합니다. 터널은 바로 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정수라는 한 개인의 생존을 통해, 이 사회가 개인의 생명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발생한 각종 건축물 안전 사고 통계를 보면 이 불편함이 더욱 현실로 다가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건축물 안전점검 결과 D등급 이하 판정을 받은 시설물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영화 속 언론의 묘사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앵커들은 실시간으로 생존자의 목소리를 방송에 내보내면서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라고 묻습니다. 이는 미디어 윤리(Media Ethics), 즉 언론이 취재 과정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립니다. 미디어 윤리란 피해자나 당사자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익적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언론의 책임 원칙을 의미합니다. 감독은 이 대사들을 실제 언론 보도를 보고 그대로 가져왔다고 했는데, 제 경험상 뉴스에서 그런 장면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묘한 불쾌감이 영화 속에도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또 하나, 영화에서 도롱뇽 서식지 문제로 터널 공사가 189일간 중단됐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오달수 배우의 대사, "터널 밑에 계신 분은 파충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는 즉흥 애드리브였는데, 도롱뇽이 실제로는 양서류임에도 파충류라고 말하는 이 실수가 오히려 캐릭터의 진정성을 살립니다. 정의롭지만 지식이 완벽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분노. 그 장면이 왜 이렇게 공감이 가냐면, 우리 대부분이 그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남긴 감정을 돌아보면, 결국 단순한 생존 서사가 아닙니다. 재난 상황에서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 방식, 개인이 구조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과연 이 사회는 나를 끝까지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한국 사회의 재난 안전 인프라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면, 이 영화가 개봉된 2016년 이후 실제 건설 현장 안전 기준이 강화된 흐름과도 맞물립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서면서 저는 그날 지나온 터널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통과했던 그 공간이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그런 역할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터널을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스펙터클을 기대하고 보시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한 사람의 버티는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어둠이 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감각을 한 번쯤 경험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kH4IeKZZ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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