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는 영화 1987을 보고 나서 꼭 그랬습니다. 2017년 개봉 당시 723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를 바꿨는지를 담아냈습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묘하게 뜨거워지는 감각도 함께였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사망합니다. 경찰은 처음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황당한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공안부(公安部)입니다. 공안부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건을 전담하는 검찰 조직으로, 당시에는 소위 '빨갱이 색출'이라 불리는 시국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던 부서였습니다. 그 공안부장 최환 검사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최 검사가 짜장면을 시켜놓고 보고를 받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권력 앞에서 일상처럼 처리되는 죽음이라는 구도가 너무 섬뜩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법대로 하겠다며 부검을 지시합니다. 하지만 이미 윗선에서는 화장(火葬)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죽은 지 8시간도 안 된 아들의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가족의 상황이 화면에 겹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부검(剖檢)이란 사망 원인을 의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시신을 해부하는 절차입니다. 영화 속에서 황 박사는 부검 결과 사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임을 확인합니다. 쉽게 말해 목을 눌러 숨을 막아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봉투를 건네며 이 결과를 덮으려 했습니다. 황 박사가 끝내 소견서에 진실을 적어낸 것이 이 사건의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당시 언론 환경도 중요합니다. 보도지침(報道指針)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보도지침이란 군부 정권이 언론사에 직접 하달하는 보도 금지 또는 보도 방향 지시로, 사실상 언론 자유를 완전히 봉쇄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부검 소견을 1면에 실어낸 것은 보통 용기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뉴스를 그냥 소비하던 시절에는 기자라는 직업의 무게를 잘 몰랐는데, 이 장면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진실이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검의 황 박사가 경부 압박 질식사 소견을 공식 기록으로 남김
- 위협을 받으면서도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가 현장 상황을 증언
- 동아일보가 부검 소견을 1면에 보도하며 여론에 불씨를 댕김
- 이부영 기자가 교도소 내부 제보를 받아 정의구현 사제단에 전달
- 사제단의 대국민 발표로 축소 은폐 시도가 수면 위로 드러남
이 다섯 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막혔다면 진실은 그대로 묻혔을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에 따르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6월 항쟁
영화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인물의 정체는 초반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볼 때 그냥 운동권 청년인 줄만 알았는데, 후반부에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 멈추겠지만, 그 인물이 연이(김태리 분)에게 건네는 신발 한 켤레가 영화 전체의 정서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자신이 신던 것과 같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건네는 그 장면에서, 저는 연대(連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연대란 같은 목표나 처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지하며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거창한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신발 한 켤레를 건네는 행위에서도 연대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라고 봅니다. 처음에 연이는 데모에 관심도 없고, 가족의 안전이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의 여주인공은 처음부터 의식이 있거나 하는데, 연이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6월 항쟁(六月抗爭)이란 1987년 6월, 전두환 군부 정권의 독재에 맞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말합니다. 단순히 학생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회사원, 주부, 상인 등 일반 시민들이 넥타이를 매고 거리로 나온 것이 이 항쟁의 특징이었습니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헌법 개정 논의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키자, 분노는 더욱 크게 폭발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을 흔든 대사 중 하나는,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부검 소견을 전달하려 했던 인물들의 행동입니다. 제 경험상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영화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1987은 정확히 그런 영화입니다. 국가 권력과 개인의 선택이 충돌하는 장면마다, 저는 지금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는 등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이 이 시기에 상당 부분 갖춰졌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우리가 지금 누리는 직선제 선거와 표현의 자유는 박종철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 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영화 1987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어느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환 검사는 법대로 밀어붙였고, 황 박사는 소견서에 진실을 남겼고, 이름 없는 교도관은 내부 정보를 흘렸고, 기자는 기사를 썼습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체인 중 어느 하나가 무너졌다면 나머지도 의미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용기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이 영화가 제게 남긴 가장 선명한 메시지입니다.
영화 1987은 티빙 또는 유튜브 구매를 통해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현대사가 이 영화 안에서 전혀 다르게 살아납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교과서 속 단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름 뒤에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는지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자유가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되새기고 싶은 분이라면, 오늘 저녁 이 영화 한 편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