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극장에서 인터스텔라를 봤을 때,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옆자리 사람이 먼저 나가는 걸 보고서야 멍하니 일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곱씹을수록 "이게 진짜 다 맞는 얘기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과학 영화라는 타이틀과 실제 연출 사이의 간극, 그리고 한국에서만 유독 폭발적이었던 흥행. 이 두 가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인구 대비 세계 1위, 한국 흥행의 진짜 이유
2014년 개봉 당시 인터스텔라의 전 세계 흥행 수익은 약 6억 7천만 달러였습니다. 미국이 1억 7천만 달러로 1위, 중국이 1억 2천만 달러로 2위였고, 한국은 7천 2백만 달러로 3위에 올랐습니다.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 한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어느 나라보다도 압도적인 수치였고, 실제로 국내 누적 관객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아바타, 겨울왕국에 이어 역대 세 번째 기록을 세웠습니다. 놀란 감독이 직접 감사 영상을 만들어 한국 팬들에게 전달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제가 직접 주변을 살펴봤는데, 과학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이 영화 하나만큼은 두 번, 세 번 극장을 찾았습니다. 교육열이 높아서라는 분석도 있긴 했지만, 저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봅니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보편적인 가족 서사 위에 블랙홀과 상대성이론이라는 지적 자극이 얹혀, 10대부터 60대까지 각자 다른 이유로 몰입할 수 있었던 구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습니다. 1980년 영화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 처음 만났고, 2005년 린다가 킵 손에게 "진짜 과학을 다룬 블록버스터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킵 손은 상대론적 천체물리학(relativistic astrophysics)의 권위자로, 이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천체 현상에 적용하는 분야를 말합니다. 그가 1988년 발표한 논문에서 웜홀을 이용한 항성 간 여행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다뤘고, 이것이 영화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킵 손은 2017년 중력파(gravitational wave) 관측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중력파란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할 때 시공간에 생기는 파동으로,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측했지만 실제 관측은 2015년에야 성공한 개념입니다(출처: Nobel Prize Committee).
원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드림웍스의 배급사 이동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흔들렸고 최종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놀란의 친동생 조나단 놀란은 각본을 위해 킵 손이 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4년간 상대성이론을 직접 공부했습니다. 이 정도 공을 들인 SF 영화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흥행이 단순한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작 방식도 놀란 감독 특유의 방식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2km² 규모의 캐나다 땅을 실제로 매입해 옥수수를 재배했고, 모래폭풍 장면은 인체에 무해한 식품 첨가제를 바람에 날려 촬영했습니다. 우주선 발사 장면은 CG가 아닌 아폴로 실제 발사 영상을 편집한 것이었습니다. CGI 의존도를 최소화한 이 방식 덕분에 영상의 물리적 질감이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상대성이론은 맞지만, 파도는 틀렸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가장 찜찜했던 부분이 밀러 행성 장면입니다. 1시간이 지구 시간 7년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시간 지연이 벌어지는 설정인데, 이 정도 시간 팽창(time dilation)이 일어나려면 행성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매우 근접해야 합니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에서 빛조차 탈출할 수 없게 되는 경계면을 뜻하며, 이 근방에서는 중력에 의한 시간 팽창이 극단적으로 커집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착륙 장면을 보면 블랙홀 가르간튀아가 멀리 조그맣게 보입니다. 킵 손 본인도 밀러 행성의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블랙홀이 가까워야 한다고 설명했고, 놀란 감독 역시 후반부 연출을 위해 초반에는 의도적으로 작게 보여줬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1.2km 높이의 거대한 파도는 제가 보기엔 명백한 오류입니다. 이런 규모의 파도가 생성되려면 기조력(tidal force), 즉 중력의 차이로 인해 천체가 잡아당기는 힘이 행성 전체에 극단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그 정도 에너지라면 지표면이 멀쩡할 수가 없습니다. 목성의 위성 이오가 기조력으로 인한 화산 폭발로 뒤덮여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파도는 극적 연출로 이해한다 해도, 과학적으로 정확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그대로 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일반 상대성이론(general relativity)의 핵심 개념인 등가 원리(equivalence principle)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등가 원리란 중력과 가속도에 의한 힘이 근본적으로 구별 불가능하다는 아인슈타인의 원리로, 이것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영화가 이 원리를 서사의 핵심으로 가져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이를 극적으로 과장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인터스텔라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밀러 행성의 1시간=지구 7년 시간 지연: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행성과 블랙홀의 거리 묘사가 모순
- 1.2km 높이의 파도: 기조력 계산상 지표면 형태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
- 레인저 호의 단독 이착륙: 고효율 추진 연료 설정으로 어느 정도 설명 가능
- 테서렉트 내부의 5차원 표현: 과학적 검증 불가 영역이지만 이론물리학의 상상과 닿아 있음
- 사랑이 차원을 초월한다는 메시지: 철학적으로 흥미롭지만 과학적 맥락에서는 비약적
2019년 실제로 촬영된 블랙홀 M87의 이미지와 영화 속 가르간튀아를 비교한 연구에서 두 형태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출처: Event Horizon Telescope). 킵 손이 시각화 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결과입니다. 이 점만큼은 영화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과 만 박사의 배신도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극적 긴장을 위한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비판도 이해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수년간 고립된 인간의 심리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그 변화 과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고 급격하게 전환되는 점은 개연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남습니다.
결국 인터스텔라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영화"라기보다, "과학적 상상력을 서사의 기둥으로 세운 영화"로 보는 게 맞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오류를 알고 봐도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인지도 모릅니다. 과학 설정이 궁금하다면 킵 손이 영화 제작 후 출간한 책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와 이론 사이의 간극을 감독 본인과 킵 손이 직접 설명한 내용이 담겨 있어, 영화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