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아킨 피닉스는 2019년 《조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히어로 영화 배우가 아카데미를?"이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엔 그 의문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조커라는 빌런이 특별한 이유 — 아서 플렉의 캐릭터 서사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아치 에너미(arch-enemy)'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아치 에너미란 히어로와 숙명적으로 대립하는 최대의 적으로,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히어로의 존재 의미 자체를 규정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배트맨에게 조커가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커 역을 맡은 배우들을 돌아보면 각자의 해석이 전혀 다릅니다. 잭 니콜슨이 코믹스에서 걸어 나온 듯한 광기를 표현했다면, 히스 레저는 카리스마와 혼돈의 화신으로서 조커를 완전히 재정의했습니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화려하거나 압도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비참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호아킨 피닉스의 몸이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23kg을 감량한 그의 앙상한 등과 갈비뼈가 드러나는 실루엣은 어떤 대사보다 먼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비참함을 전달했습니다. 이 수준의 신체적 헌신을 캐릭터 서사와 맞물려 표현해낸 것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서 플렉은 특별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게 지쳐 있습니다. 이 영화가 일반적인 DC 확장 유니버스(DCEU)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DCEU란 DC 코믹스 원작의 영화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를 의미합니다. 《조커》는 그 세계관과 사실상 무관하게 홀로 존재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엘스월드(Elseworlds) 스토리에 해당하는데, 엘스월드란 기존 DC 세계관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설정된 이야기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 선택 덕분에 영화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문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조커가 배트맨과 숙명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구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서가 조커로 각성하는 순간, 그의 행동이 촉발한 혼돈 속에서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살해당합니다. 한쪽에서 악이 태어날 때 다른 구석에서 정의가 태어나는 것, 둘의 운명이 처음부터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히스 레저의 조커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둘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봅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는 이미 완성된 혼돈의 화신이었고,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그 화신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였으니까요.
사회가 만든 괴물 — 무관심과 단절이 낳은 결과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를 이야기하면 "그냥 범죄자 이야기 아니냐"고 반응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아서 플렉을 무너뜨린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반복되는 신체적·언어적 폭력과 무방비 상태의 방치
- 정신건강 지원 시스템의 붕괴와 상담 서비스 중단
-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계층 간의 단절
- 토머스 웨인과 머리 프랭클린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냉소
- 어머니 페니 플렉의 학대와 거짓말이 만들어낸 정체성의 붕괴
이 목록을 보면 어느 하나가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부가 겹쳐서 한 사람을 무너뜨렸습니다.
실제로 정신질환과 사회적 고립의 연관성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과 불안 장애의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로, 고립 상태의 개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건강 악화 속도가 현저히 빠른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영화가 그리는 아서 플렉의 상태는 이 연구 결과와 정확하게 겹쳐집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마음이 쓰였던 장면은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습니다. 대사도 없고 설명도 없습니다. 그냥 그가 춤을 춥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이게 해방인지 절망인지 한동안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둘 다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커로 각성한 이후 아서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아무런 선동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자신의 행동과 이념을 직접 설명하는 것을 즐겼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그저 거기 존재할 뿐입니다. 존재 자체가 메시지가 된 셈입니다. 이 차이가 이 캐릭터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에서 이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경고가 퍼진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미디어 속 폭력 묘사와 현실 모방 범죄의 상관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이 이러한 콘텐츠에 노출될 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그 수준으로 경계해야 할 정도로 미국 사회의 계층 갈등이 깊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문제를 만든 게 아니라, 사회가 이미 그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죠.
마지막 결말 처리에 대해서는 저도 다소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조커가 병원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굳이 넣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후속작을 위한 열린 결말이라고 이해하더라도, 그 직전까지 완성도 높게 쌓아 올린 감정의 흐름이 조금 흐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커의 탄생과 무너진 고담, 광대 가면을 쓴 군중이 의미하는 것을 한 번 더 응시하는 방향으로 마무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남습니다.
《조커》는 10점 만점에 8점짜리 영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즐겁게 소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쪽이었던 적이 없었는지. 그 불편한 질문이 오래 남는 작품을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그 기준을 충족합니다.